중학교 시절의 기억은 대부분 흐릿하지만, 체육시간 옷을 갈아입을 때 애들이 (복제CD로) 틀어놨던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는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러나 <싸구려 커피>가 사회에 일대 파란을 일으키며 유행할 때, 나는 별 관심 없었다. 내가 장기하와 얼굴들에 빠지게 된 건 그로부터 몇 달 후 친구의 전자사전에 저장되어 있던 장기하와 얼굴들 1집을 얻어 듣고 나서다(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것도 불법이었다). 음악이 내 생각대로 전개되지 않는 거다. 그런데 너무 신선하고 그 배신당하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아직도 나는 좋은 사람
장기하와 얼굴들을 알고 나서 페퍼톤스, 국카스텐, 못(Mot), 3호선 버터플라이 등으로 관심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2000년대 초중반 죽어버린 인디씬의 부흥에 시동을 걸면서, 나도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것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그래서 내게 음악 듣기를 시작하게 해준, 아주 고마운 밴드다.
가나다 순으로 보다 보니 삼백 명쯤 되는구나
뭐라도 퍼주고 싶어, 당신에게는
장기하와 얼굴들은 2008년 1집을 내고, 지금까지 총 네 장의 앨범을 내고 꾸준히 활동중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밴드로 빠지지 않고 언급되지만, 개인적으로는 대중적으로 '장기하와 얼굴들'보다는 장기하 개인으로서 인식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그마저도 작년 아이유와의 연인관계가 알려지고 나서는 '아이유의 연인'으로 회자되는 경우가 많으니 찝찝한 기분이다. 남의 연애엔 왜 그리 관심들이 많으신지?
아무튼, 매 앨범마다 진화를 거듭하여 새로운 사운드와 발전한 보컬을 보여주는 장기하와 얼굴들. 그들은 이미 그들만의 음악세계를 확실히 구축했다.
한글대마왕 장기하.
*장기하가 맞춤법을 틀린 부분이 있다. '바랐어'를 '바랬어'로 부른 것.
*맞춤법 규칙상으로는 '바랐어'가 맞지만, 장기하가 의도하고 '바랬어'를 썼을 가능성도 크다. (1) 표준어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쓰는 방식으로 규정되기 때문에 국립국어원의 지침에 반대 목소리가 나오는 경우도 많고, (2) 장기하는 자타공인 문법경찰인데다가 (3) 가사에 의도적으로 비표준어를 쓰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 (예: 1집의 <아무것도 없잖어>에서 '없잖아'아 아니라 '없잖어'를 쓴 경우. 경기도 방언이다). <ㅋ>의 경우에도 '바랬어'가 보다 더 자연스럽게 들린다.
*쓸데없이 분석적이다.
한글대마왕 장기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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